물과 관련된 즐거운 기억들
나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네다섯 번쯤 있다. 그때마다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물에 대한 기억은 이상할 만큼 긍정적이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평온한 기분을 느끼곤했다. 아마 살아남았기 때문에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섬나라에서 유학하며 지낸 시간 속에서, 물놀이의 기억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리조트에서의 기억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아마 학교에서 같이 간 리조트에서의 기억이 있다. 유수풀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구간에 들어섰다.
발을 디디려고 해도 허공만 차는 기분이었고, 튜브를 잡은 팔에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발끝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긴장해서 몰랐던 것인지, 그 구간에는 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겨우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공포는 또렷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유수풀을 여전히 좋아한다. 지금도 리조트에 가면 몸을 가만히 맡기고 떠다는 것을 즐긴다.

바닷가에서의 체험들
중학교 시절, 선교팀을 따라 자주 방문했던 곳이 있었다. '바탕가스'라는 지역이었다. 바나나보트를 타고 바다를 질주하고, 스노쿨링을 하며 산호초를 구경했다. 하지만 역시, 내게 가장 깊이 남은 건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곳에서는 간단한 릴낚시로 생선을 잡았다. 잡은 생선을 바로 포를 떠서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그 신선함과 고소한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내가 먹었던 회 중 가장 맛있는 회라고 기억된다.

초등학교 졸업여행: 보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필리핀의 '보홀'로 졸업여행을 갔다. 그곳에서도 스노쿨링을 하고, 원주민들의 불쇼, 그곳에서 서식하는 타르시어 원숭이 등을 둘러봤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쿠버 다이빙이었다.
수면 위에서는 단순히 푸른 절벽같은 광경이 보일 뿐이었지만, 장비를 착용하고 절벽처럼 깊게 꺼진 바다 속으로 내려가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산호초와 물고기들 사이를 떠다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내 발 아래 펼쳐진 깊이를 바라보며 느낀 설렘을 잊을 수 없다.
민도로섬에서의 여름
중학생 때 방학 어느 날, 어머니가 새벽에 나를 깨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 나선 나는, 고모, 고모부와 함께 배를 타고 '민도로'라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산에 둘러싸인 조용한 해변 마을이었다. 하얀 모래사장과 맑은 바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해변 가까운 곳에서도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게 보였고, 독이 있다는 바다뱀도 구경했다.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서로 흘긋 쳐다본 뒤,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갔다. 그 여행은 특별한 일정 없이, 바다에 들어가고, 산책하고,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주 단순했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깊게 남았다. 나에겐 무료한 방학 때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서프라이즈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물고기가 도로를 헤엄치던 날
물에 관한 기억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태풍은 매해 찾아왔고, 때때로 도시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특히 한 번은 이사한 새 빌리지에서 경험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해는 운이 좋게도 하수가 역류하지 않았고, 깨끗한 빗물만 도로 위를 가득 채웠다.
물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냇가의 물고기들이 도로 위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나는 쓰레받이를 들고 즉석에서 낚시를 했다.
큰 물고기는 아니었지만, 그 광경 자체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아쉽게도 그 물고기들은 풀려났지만, 지금껏 내가 경험한 태풍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마무리
물과 관련된 기억이 항상 좋은 기억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이 모든 기억들 덕분이다. 두려움과 즐거움이 함께 쌓인 시간들. 살아서 즐길 수 있다는게 감사하다는 것임을 지금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근처 찜질방에 몸을 담구면서도 어린 시절 기억이 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