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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했던 첫 대학생활

theleaf99 2025. 5. 5. 17:19
https://unsplash.com/ko/s/%EC%82%AC%EC%A7%84/polar-bear?license=free 처음에 영하 20도라는 수치를 보았을 때는 꿈인가 싶었다.

포천, 나에게는 북극 같은 곳

내가 처음 다닌 대학은 경기도 포천에 있었다. 지리상으론 서울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있는 도시였지만, 10년 동안 따뜻한 필리핀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마치 북극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국의 겨울이 춥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뉴스나 영화에서 보던 이야기일 뿐, 실제로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을
내가 겪게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다이소에서 수면양말을 여러 개 사서 2겹씩 껴 신고 다녔다. 내복이라는 것도 어린 시절 기억에서 꺼내와서 사입어보게 되었고, 기숙사 건물도 방 밖은 차가웠다. 손가락이 굳어 키보드가 잘 눌리지 않을 정도였다.


도서관의 기억, 라디에이터 하나에 의지하던 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아마 2학기 기말고사 무렵일 것이다. 당시 포천의 기온은 영하 22도를 찍고 있었다. 그런 날, 도서관 관리인이 창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퇴근했다. 그날 밤, 도서관 내부는 거의 냉장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작은 라디에이터 1대에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했다. 라디에이터에서 10cm만 떨어져도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공부는커녕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기말고사는 다가오고 있었고,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추억이라 부르기엔 조금 혹독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다.


4월의 우박, 낯선 계절의 풍경

날이 조금 풀린 4월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처럼 가볍지 않고, 어딘가 둔탁한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작은 크기의 우박이라 위험하진 않았지만, 그 풍경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필리핀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상 현상을 그해 봄, 한국에서 처음 마주했다. 겨울의 혹독함도, 봄의 우박도, 모든 것이 너무 낯설고, 한꺼번에 몰려든 듯한 느낌이었다.


https://unsplash.com/ko/s/%EC%82%AC%EC%A7%84/toast-drink?license=free

대학 문화 속의 거리감

대학교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술 문화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그런 한국식 술자리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술이 잘 맞지 않는 체질이기도 했다. 그냥 음료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강요되지 않아도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존재했다.
 
다행히 내 학과는 그리 강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회식 자리에 빠지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겼다. 겉으로는 웃으며 같이 어울리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을 계속 되뇌던 기억이 있다.


다음 이야기 예고

그래도 그 시간들이 모두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혹독했던 첫 대학생활 속에서도
웃었던 순간들, 따뜻했던 기억들을 꺼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