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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의 숙명, 군대 이야기

theleaf99 2025. 5. 7. 18:00

실제 미군 군복. 나도 이 군복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군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어느 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2학년을 마치고 함께 입대해 복학 시기를 맞추자는 의견이 많았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고, 단순히 소모되는 시간으로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카투사(KATUSA)*"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인생의 2막, 카투사 지원

카투사는 인생에 단 한 번만 지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탈락하면 다시는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은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카투사는 성적순이 아니라 토익 점수 구간별 추첨으로 뽑힌다. 총 3개 구간(커트라인 780점 이상~만점 990점 사이 3구간)으로 나뉘고, 무작위 추첨이라지만, 결국 각 구간 안에서 무작위로 선발되기 때문에 고득점자일수록 경쟁자가 적어 합격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920점대의 토익 점수를 가지고 가장 경쟁률이 낮다는 8월 입영 날짜를 노려 신청했다. 과연 될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시도조차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8월의 남자

지원 사실도 잊을 즈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친척 어른의 장례식이 있어 광주에 내려가던 길이었다.
그때 카카오톡으로 도착한 문자 한 통.

“KATUSA 합격을 축하합니다.”

입대일은 8월 12일.
신기하게도, 내가 필리핀으로 처음 떠났던 날과 같은 날짜였다. 몇몇 친구들은 부러워했고, 내가 종교가 있다는 걸 아는 친구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놀리듯 축하했다. 웃기면서도 조금 민망한,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였지만, 나에겐 이제 확정적인 미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 그것은 미지의 경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반은 한국 남자라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공존했다.


입대를 앞두고

입대는 다음 해 8월로 확정되었고, 나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필리핀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갔다. 그 시절의 나는 솔직히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군대라는 낯선 환경을 앞두고, 불안과 긴장이 겹쳐져 말과 행동이 거칠어졌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그래도 다행히 그 시간은 단절보다는 회복의 방향으로 흘렀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은 나를 조금씩 안정시켰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공부에서 벗어나, 정해진 것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머리속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저 몸을 쓰는 것을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과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것 같다. 


이런 무대의 조명을 내 손으로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기억, 알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군대 가기 전 마지막 방학을 알바로 채웠다. 방학마다 해오던 음향·조명 관련 행사 알바였고, 이번에는 무대 조명 설치와 연출을 맡았다. 음악과 상황에 맞춰 빛을 조절하는 작업은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연주하는 밴드의 음악에 맞춰 나도 같이 조명으로 연출하는 광경은, 마치 나도 그들과 연주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때는 단순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진 기술의 시작점이었다. 그 기술은 지금도 내가 굶어 죽지 않게 해주는 자산이다. 무대를 기획하고 조명과 음향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더 풀어보려 한다.)


다음 이야기 예고

그렇게 나는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겪은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