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들

골을 넣고 싶던 소년의 축구 일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아버지를 따라 축구 경기하러 간 것은. 대부분 어른들이었고, 나는 깍두기처럼 최전방에서 공격수 역할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서 페널티 킥을 차게 되었는데, 그때가 내 첫 골이었다. 골키퍼를 하던 고등학교 형이 봐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그 뒤엔 집에 와서 그날 몇 골을 했는지, 어시스트는 몇 개를 했는지 적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축구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중학생 때까지 적어놓았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축구선수가 된 것처럼 느끼며 자랐던 것 같다

닌텐도 DS가 열어준 우정의 문
아버지가 어느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내게 선물이 있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어린이날도, 생일도 아니어서 의아해했었는데, 닌텐도 DS를 사 오셨다. 그때 닌텐도는 지금으로는 스마트폰이나 다름없었고, 친구들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어 기기간 연동해서 같이 놀기도 했었다. 나는 아버지께 90도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 아부지"라고 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내 딴에는 가장 감사함을 표하는 방법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선물해주신건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이다. 덕분에 더 많은 추억을 쌓았고, 유년시절의 마지막을 부족함 없이 보냈다고 생각한다.

MP4와 함께한 3시간의 통학길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에 계신 작은어머니가 선물해 주셨다면서 MP4라는 것을 처음 받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USB형식의 MP3를 가지고 다니는 형을 보며 부러워했었다.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며 노래를 듣던 기숙사 형들도 부러웠었다. MP4의 성능과는 별개로, 이제 나도 비슷한 기기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중요했다.
차이점이라면 영상이 재생이되고, 화면이 있는, '아이팟'과 비슷한 느낌이다. 자체 게임도 있고, 텍스트파일도 들어갔었다. 나는 노래를 들어도 한 곡만 1000번 재생이 될 때까지 듣고, 책을 읽어도 여러 번 다시 읽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왕복 3시간 정도의 등하교 시간은 나에게 노래 들으며 책을 읽기 좋은 시간이었다.
브룩사이드 빌리지는 국제학교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어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나는 형이 넣어준 포맨(4Men)의 ‘살다가 한 번쯤’ , 8eight의 '잘 가요 내 사랑'등 발라드 곡 4-5개와, 이제는 유명한 웹소설을 파일에 넣어 다니면서 긴 통학시간을 버텼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습관은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박효신의 '야생화'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