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제를 깨닫게 되었던 건 아버지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중학생의 용돈 관리
필리핀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 미성년자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외에서 돈 모으기 위해 일할 수는 없으니, 용돈이라도 모았을까?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주신 정기적인 용돈으로 돈을 모은 것이 아니다. 사실 나에게 용돈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간식 사먹을 소소한 돈이었고, 그정도는 부모님이 얼마든지 사주셨다. 특히 필리핀에서 내가 사먹는 간식이라고 해봤자 당시 3000-4000원으로 사먹을 수 있던 사각 치즈 묶음, 가끔 먹었던 100원짜리 빵들이었다.
의도치않게 돈을 모으게 된 것은, 아버지를 따라 선교팀 가이드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환전을 해서 팀마다 얼마씩 가져오고, 당연히 여행을 하다보면 다 쓰게 되는 경우는 잘 없다. 보통은 여유있게 가져오기 때문에 항상 조금씩 남았는데, 몇몇 어른들이나 친구들은 굳이 그것을 가져가서 환전하기 보다 현지에서 잘 써달라고 내게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모아온 돈은 10000페소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환율로는 30만원이었고, 현지 사정으로 보나 내 나이로 보나 거금이었다.

아버지와의 커피타임
아버지는 내게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면 항상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셨다. 물론 나는 달달한 프라푸치노를 먹었고,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입맛이 고급인지라 보통 스타벅스를 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싸인을 만들어보자고 하셔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 싸인은 지금도 사용할 정도로 잘 만들었던 것 같다. 그게 아버지와의 계약의 초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계약이었지만, 나는 그일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와의 경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투자의 방식과 이자율을 설명해주시면서 아버지는 10000페소를 받는 대신 매달 100페소를 지급해 주시기로 했다. 보통 용돈은 어머니에게 받았기 때문에 내 용돈에 +100페소가 되는 계약이었다. 즉, 사실상 대출을 해드리고 월 이자 1%를 받는 것이었지만, 어디 부모자식 사이에 그런 것들이 있겠는가. 그렇게 아버지가 노트에 적은 계약서에 방금 만든 싸인을 하고 부모님께 그 돈을 드렸었다.
집에 있던 작은 형은 그런 나의 행동을 보고 "이제 그 돈은 날라갔다."며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는 투로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10000페소는 당시에 내겐 큰돈이었고, 사용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애초에 내 노동의 댓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둘째 형은 필리핀에서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나는 국제학교를 다녀서 다른 로컬보다 비쌌다. 급식비와 스쿨버스비를 내가 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 한 3달정도는 내가 모은 돈으로 내 급식비와 차량을 해결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아버지는 몇달간 그 계약을 지켜 주셨다. 그 뒤에는 잊어버리신 건지 모르지만,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부모님께서 다 해주셨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시절이 요즘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