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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의 한국생활 적응기

theleaf99 2025. 5. 2. 17:13
https://unsplash.com/ko/s/%EC%82%AC%EC%A7%84/missionary?license=free 통계에 의하면 대략 40%의 선교사 자녀들은 정신적 질환을 가지고 있고, 그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환경의 변화와 주변의 시선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MK, 그리고 애매한 정체성

나는 MK였다.
Missionary Kid, 선교사 자녀. 선교사인 부모님의 사역지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은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표면적으론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은 내게 외국만큼 낯선 공간이었다. 길거리 간판이 전부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부터가 어색했고, 같은 한국어를 쓰는 친구들과도 감정선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MK로 자라면서 나는 국적이나 민족보다 삶의 방식이 정체성이라는 걸 배웠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 정체성을 다르게 해석했다.
한국인인데 한국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기도 했다.

 

https://unsplash.com/ko/s/%EC%82%AC%EC%A7%84/university?license=free

대학교,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몇 주간은 그저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동기들과의 대화 속에서 뭔가 근본적인 차이를 느꼈다. 나는 친밀함과 협력이 중심인 문화에서 자랐고, 동기들은 철저한 성적 중심 경쟁 구조에서 자라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교육은 함께 실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동기들은 서로의 성적을 경계하고, 작은 정보도 공유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이건 단순한 학교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의 차이였다.
 
그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에는 '차갑다'라는 기분을 받았었다. 내가 제공하는 것들은 쉽게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것은 나누기 꺼려하는 모습에서, 경쟁사회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목표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부분의 동기들은 **의전원(의학 전문 대학원)**을 목표로 입학했다고 했다. 입학 자체가 의전원 입시를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도 물론 의료계의 꿈을 가지고 왔지만. 생각보다 많은 동기들이 그렇다는 사실은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예비 경쟁자들을, 시작부터 만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겐 대학은 의전원 진학의 도구였다. 그때 알게 됐다.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이들은 이미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는 억지로 다가가려 애쓰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적응하기 위해 동아리에 매달리다

나는 겉돌지 않기 위해 동아리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을 익히고 싶었다. 신입생 시절 내가 들었던 동아리는 총 6개였다.
 
하루는 이렇게 흘렀다. 아침 9시 1교시 수업을 위해 나와서, 기숙사로 돌아오면 밤 10시, 때로는 11시가 넘었다. 빽빽하게 채운 하루는 사회 적응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말을 건네고, 같이 식사하고, 행사도 기획했다. 그 모든 활동 속에서 나는 “나도 이곳에 어울릴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을 얻어갔다.
 
마냥 힘들게 적응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즐거운 추억들도 얻었고, 잔잔한 위로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약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묵직한 시작

생각해보면, 적응이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특히 그 적응이 내 정체성과 연결될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의 첫 해는
내가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가득 찼다.
 
지금은 그 질문의 답을 조금은 부드럽게 생각할 수 있다. 그저, 그 시절 나는 어떤 공간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한국에서 새롭게 정체성을 확립했던 시기를 보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