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사이드 Dayspring Academy
2008년, 우리 가족은 브룩사이드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그 이름답게 시내 옆(brook + side)에 지어진 마을이었다.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국제학교를 떠나 필리핀 로컬 학교인 Dayspring이라는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 학기제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국제학교의 여름방학을 잃고 바로 등교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방학 때 신나게 놀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어서 크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한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같은 학년에는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었다. 아무래도 유학을 중~고등학생 때 많이 오다 보니, 초등생의 비율이 적었던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필리핀은 고등학교 1학년, 즉 Grade 10이 마지막 학년이고 바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저번 학교에서 처럼(전편의 첫 로컬학교) 사고를 치지는 않았고, 그냥 조금 불성실한 학생이자, 여전히 수학과 음악만 잘하는 이상한 학생이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영어를 어느 정도 배운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칠판에 써진 영어가 필기체였다는 것이다. 필기체를 다시 익히기까지 수업 내용은 여전히 내게 외계어로 다가왔다.
도시락과 스트릿 푸드들
대부분의 필리핀 학교는 급식이 따로 없고, 한국 학교처럼 매점에서 사 먹거나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도 도시락통을 들고 다니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매일 어떤 메뉴가 있을지 기대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리핀 아이들보다 질 좋은 식단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 집이 부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식단 수준을 준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2008년에는 그래도 꽤 차이가 났었다.) 필리핀에서 메뉴 2-3가지는 준비해 주실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닭요리를 좋아했는데, 백숙, 치킨 할 것 없이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필리핀은 닭이 주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닭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도시락에 가끔 닭다리 튀김을 해주실 때는 제일 기분이 좋았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연말이 돼 가며 비가 점점 많이 내리던 때였다. 비가 많이 내리면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단축수업을 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날은 폭우로 인해 점심만 먹고 조기 하교를 했는데, 도시락 속 바삭한 치킨 다리 하나로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필리핀에서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라고 하면 피쉬볼(Fishball)과 여러 꼬치들이다. 물론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불량음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움직이는 포장마차 같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즉석에서 기름에 튀겨주는 데 하나에 당시 0.25페소, 한국 돈으로 5원정도 였다. 알아서 건져 먹고 몇 개 먹었는지 계산했었는데, 집 앞에서 어묵꼬치 사 먹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나곤 한다.
그리고 싸리싸리 스토어(sari-sari store)가 있었다. 싸리싸리 스토어(sari-sari store)는 필리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멍가게 같은 존재였다. 요즘 편의점과는 다르게 철망 너머로 물건을 사고파는 그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정겨웠다. 문자 그대로 철망으로 가려져 있고 중간에 상품과 돈만 오갈 정도의 작은 문이 있었다. 주로 사 먹었던 것은 Cobra라는 음료인데, 우리나라 박카스 같은 에너지 드링크지만 효과는 좀 센, 그런 음료수였다. 주말마다 아빠와 형과 같이 축구를 갔다 올 때마다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길거리 베이커리가 굉장히 많았다. 거기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바로 악어빵이었다. 악어모양의 빵이었고, 그저 안에 가끔 있는 치즈가 다였는데, 맛보다는 외견 때문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 나는 다시 국제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가 있던 집을 초등 기숙사로 사용해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있었다.(5-6학년) 그들도 아버지가 스쿨버스를 운행하시면서 베이커리 앞을 지날 때마다 악어빵을 사달라고 했던 추억도 남아있다. 지금은 동남아지역에도, 심지어 한국에도 악어, 동물모양 베이커리가 많이 있지만 악어빵을 기억하는 건 맛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의 한 조각인 것 같다.
지금 와서는 맛으로 즐길만한 음식들은 거의 없고, 로컬 학교도 너무나 작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그때는 그렇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