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가 끝나고, 조용해진 교실
대학 입시가 끝나자, 어느새 고3 1학기도 거의 끝나 있었다. 남은 것은 학교 생활을 정리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교실 분위기는 조용했다. 모두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혹시라도 떨어진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들뜨는 기분을 숨겼다. 특히 대부분의 결과는 2학기 즈음에 발표됐기 때문에, 기뻐도 조용히, 실망해도 조용히.
그게 서로에 대한 작은 예의처럼 여겨졌다.

여름방학, 그리고 긴장 속의 호캉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8월 중순, 나와 부모님은 소피텔 호텔로 호캉스를 가게 되었다. 입시 준비로 지친 나를 위해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휴식이었다. 모처럼 호텔에서 하루를 푹 쉬고, 조식도 맛있게 먹고, 방 안에서는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그날은 가고 싶었던 대학의 결과 발표일이었다. 편하게 쉬려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결과 생각뿐이었다. 노트북 화면을 열면서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예상치 못했던 입시 시험과 면접
사실 그 대학은 준비를 제대로 못 했던 곳이었다. 나는 2년 전 입시 자료를 참고해서 수학과 영어를 준비했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수학 시험은 없었고 영어 시험과 면접만 있었다. 면접 일정이 있다는 것도 시험장에 가서야 알았다.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긴 점은 수학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영어 시험은 총 14문제였고,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수준이었다. 이전편들에 언급했듯, 200문제씩 풀어온 나에게 한국 영어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를 푸는 동안 긴장 대신 안도감이 들었다.
면접도 전공 심층 면접이 아니라 자기소개 중심 면접이었기 때문에 준비해간 자기소개서와 기타 서류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결과를 마주하던 순간
그럼에도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입시는 결국 상대 평가였다. 내가 잘해도, 더 잘한 사람이 있으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노트북을 통해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특유의 담담한 성격을 가져서, 별다른 리액션 없이,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며 쉬고 계시던 부모님께 조용히 말했다.
"나 합격했어."
내 기억 속에서는, 오히려 부모님이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하셨던 것 같다.
고3, 남은 시간의 자유
대학 합격이라는 큰 짐을 내려놓은 뒤, 고3 2학기는 사실상 자유 시간이었다. 수업은 그대로 진행됐지만, 학교 측도 입시 준비가 남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어 일정을 배려해주었다.
- 영어 수업은 계속했지만,
- 한국어 수업 시간은 입시 관련 자기계발 시간으로 쓸 수 있었다.
덕분에 2학기에는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기억나는 일들이 많다. 교실에 프로젝터를 연결해서 컴퓨터 게임을 화이트보드에 중계했던 일, 애니메이션 전편을 교실에서 단체로 정주행했던 일, 수업 시간에 대강당으로 몰려가서 친구들과 배구를 했던 시간.
서로의 실패도, 성공도 잠시 묻어두고,
그해 마지막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 축제처럼 보냈던 기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