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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의 숙명, 군대 이야기

군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다대학교 2학년 1학기 어느 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2학년을 마치고 함께 입대해 복학 시기를 맞추자는 의견이 많았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고, 단순히 소모되는 시간으로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그때 처음으로 "카투사(KATUSA)*"라는 선택지를 고민하게 되었다.인생의 2막, 카투사 지원카투사는 인생에 단 한 번만 지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탈락하면 다시는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은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카투사는 성적순이 아니라 토익 점수 구간별 추첨으로 뽑힌다. 총 3개 구간(커트라인 780점 이상~만점 990점 사이..

카테고리 없음 2025.05.07

기억에 남는 동아리 활동들

교회에서 시작된 음악의 첫걸음나의 음악적 소양은 대부분 교회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 찬양팀에서 기타를 치던 형들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중학생 때부터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보컬 연습도 병행하게 되었고, 성가대 활동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목사님으로 계셔서, 아들인 나는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그런 자리에 봉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모범을 보여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때의 경험들은, 다행히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도 하면서 음악적 소양을 키웠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 기타연습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음악 동아리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음악은 내게 늘 두려움보다 설렘을 주는 공간이었다.공원과 무..

카테고리 없음 2025.05.06

혹독했던 첫 대학생활

포천, 나에게는 북극 같은 곳내가 처음 다닌 대학은 경기도 포천에 있었다. 지리상으론 서울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있는 도시였지만, 10년 동안 따뜻한 필리핀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마치 북극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국의 겨울이 춥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뉴스나 영화에서 보던 이야기일 뿐, 실제로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을내가 겪게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다이소에서 수면양말을 여러 개 사서 2겹씩 껴 신고 다녔다. 내복이라는 것도 어린 시절 기억에서 꺼내와서 사입어보게 되었고, 기숙사 건물도 방 밖은 차가웠다. 손가락이 굳어 키보드가 잘 눌리지 않을 정도였다.도서관의 기억, 라디에이터 하나에 의지하던 밤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아마 2학기 기말고사 무렵일 것이다. 당시 포천의..

카테고리 없음 2025.05.05

MK의 한국생활 적응기

MK, 그리고 애매한 정체성나는 MK였다.Missionary Kid, 선교사 자녀. 선교사인 부모님의 사역지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은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표면적으론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은 내게 외국만큼 낯선 공간이었다. 길거리 간판이 전부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부터가 어색했고, 같은 한국어를 쓰는 친구들과도 감정선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MK로 자라면서 나는 국적이나 민족보다 삶의 방식이 정체성이라는 걸 배웠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 정체성을 다르게 해석했다.한국인인데 한국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기도 했다. 대학교,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다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몇 주간은 그저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동기들과의 대화 속에서 뭔가 근본적인 ..

카테고리 없음 2025.05.02

대학 입시 결과와 고3 생활

입시가 끝나고, 조용해진 교실대학 입시가 끝나자, 어느새 고3 1학기도 거의 끝나 있었다. 남은 것은 학교 생활을 정리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교실 분위기는 조용했다. 모두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혹시라도 떨어진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들뜨는 기분을 숨겼다. 특히 대부분의 결과는 2학기 즈음에 발표됐기 때문에, 기뻐도 조용히, 실망해도 조용히.그게 서로에 대한 작은 예의처럼 여겨졌다.여름방학, 그리고 긴장 속의 호캉스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8월 중순, 나와 부모님은 소피텔 호텔로 호캉스를 가게 되었다. 입시 준비로 지친 나를 위해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휴식이었다. 모처럼 호텔에서 하루를 푹 쉬고, 조식도 맛있게 먹고, 방 안에서는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그날은 가고 싶었던..

카테고리 없음 2025.05.01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날들

고등학교 2학년,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다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외국민 전형을 목표로 원서를 접수해야 했다.재외국민 전형에는 몇 가지 구분이 있었다. 3년제, 9년제, 그리고 12년제. 12년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해외 학교를 다닌 경우에만 해당했고, 나는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3년제로도 충분히 수시전형에 이점이 있었다. 당시 내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바로 한국에 있는 의대에 진학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생명과학 분야로 전공을 정하고, 의학 전문 대학원에 진학을 상상하며 입시를 준비했었다.이과를 선택한 이유와 수학과의 싸움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과와 문과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과학을 좋아했고, 꿈도 의료계열이었기 때문에 ..

카테고리 없음 2025.04.30

물과 관련된 즐거운 기억들

나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네다섯 번쯤 있다. 그때마다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물에 대한 기억은 이상할 만큼 긍정적이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평온한 기분을 느끼곤했다. 아마 살아남았기 때문에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역시 섬나라에서 유학하며 지낸 시간 속에서, 물놀이의 기억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리조트에서의 기억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아마 학교에서 같이 간 리조트에서의 기억이 있다. 유수풀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구간에 들어섰다. 발을 디디려고 해도 허공만 차는 기분이었고, 튜브를 잡은 팔에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발끝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카테고리 없음 2025.04.29

알고 보니 재미있고 특이했던 영어 공부 생활

영어로 배운 사회과학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영어를 배웠다. 우리 학교에서는 사회 과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쳤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영어로 세계사를 배우고, 지리를 배우고, 사회학을 배웠다. 당시에는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어진 교재를 받아들고, 수업에 따라갔다. 교재는 꽤 두껍고, 내용도 복잡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책들은 대학교 1학년 교재였다. 중학생이 대학 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선생님들은 그걸 그대로 읽으라고 하진 않았다.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해주셨다. 중학교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영어로 배운다고 해서 어려운 단어를 억지로 외우게 하거나, 암기만..

카테고리 없음 2025.04.28

ESL이 토익 900점대가 되기까지

영어라는 낯선 이름과 나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ESL 반에 들어갔다.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말 그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 들어가는 반이었다. 선생님은 영어로만 수업을 했고,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나마 몇 단어 정도만 들렸고, 그걸 바탕으로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 수업은 어렵고 답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억지로라도 듣고 맞추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영어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단어 하나하나보다는 상황을 통해 의미를 추측하는 방식이 내게 잘 맞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영어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를 위해 원어민 선생님들은 사탕 같은 군것질 거리를 상으로 주셨다. 당시에 ..

카테고리 없음 2025.04.26

내가 경제를 깨닫게 되었던 건 아버지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중학생의 용돈 관리 필리핀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 미성년자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외에서 돈 모으기 위해 일할 수는 없으니, 용돈이라도 모았을까?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주신 정기적인 용돈으로 돈을 모은 것이 아니다. 사실 나에게 용돈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간식 사먹을 소소한 돈이었고, 그정도는 부모님이 얼마든지 사주셨다. 특히 필리핀에서 내가 사먹는 간식이라고 해봤자 당시 3000-4000원으로 사먹을 수 있던 사각 치즈 묶음, 가끔 먹었던 100원짜리 빵들이었다. 의도치않게 돈을 모으게 된 것은, 아버지를 따라 선교팀 가이드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환전을 해서 팀마다 얼마씩 가져오고, 당연히 여행을 하다보면 다 쓰게 되는 경우는..

카테고리 없음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