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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이드했던 필리핀 여행지들

아버지의 비서로 산다는 것선교지에 있다보면,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선교여행'이라는 것을 우리 집에 올 때가 있다. 주로 필리핀 빈민가, 아버지의 사역지 등 여러 곳을 다니다가, 하루 이틀 정도는 관광지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아버지가 만든 선교여행 기획이었다. 중학생들, 고등학생들, 청장년 등 나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팀이 왔었는데, 보통 한국의 방학 때마다 오기 때문에 나도 시간이 있었고, 점점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회화와 통역이 가능해져 그 일정들을 함께 하며 아버지의 비서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관광지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가이드처럼 그곳의 역사, 이야기을 설명했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 그 중 실제로 가볼만한 곳을 추려서 소개를 해보겠다. 인트라무로스와 호..

카테고리 없음 2025.04.10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들

골을 넣고 싶던 소년의 축구 일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아버지를 따라 축구 경기하러 간 것은. 대부분 어른들이었고, 나는 깍두기처럼 최전방에서 공격수 역할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서 페널티 킥을 차게 되었는데, 그때가 내 첫 골이었다. 골키퍼를 하던 고등학교 형이 봐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그 뒤엔 집에 와서 그날 몇 골을 했는지, 어시스트는 몇 개를 했는지 적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축구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중학생 때까지 적어놓았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축구선수가 된 것처럼 느끼며 자랐던 것 같다 닌텐도 DS가 열어준 우정의 문아버지가 어느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내게 선물이 있다고 하셨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4.09

잊히지 않는 태풍의 흔적들

선교사 자녀 학교 초등 기숙사2009년, 나는 국제학교로 돌아갔다. 선교사 자녀 학교라는 특수성이 있어 대부분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었는데,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기숙사 사감을 맡은 우리 부모님이셨기에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살던 브룩사이드의 집은 마당이 있고 주변에 공원도 있던, 주거 환경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당연히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끔은 마당에서 캐치볼도 하고, 골프도 쳐보고, 공원의 축구장에서 축구도 하는 좋은 환경에서 보낼 수 있었다. 아침으로는 주로 판데살이라 불리는 필리핀 전통 빵을, 점심 저녁에는 어머니와 가정부(현지에서는 ‘아떼(ate)’라고 부르는데, 언니 또는 누나라는 뜻이다.)가 같이 한식을 준비해 주었다. 토요일에는 한인들..

카테고리 없음 2025.04.08

필리핀 브룩사이드(Brookside), 나의 유년 시절

브룩사이드 Dayspring Academy2008년, 우리 가족은 브룩사이드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그 이름답게 시내 옆(brook + side)에 지어진 마을이었다.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국제학교를 떠나 필리핀 로컬 학교인 Dayspring이라는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 학기제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국제학교의 여름방학을 잃고 바로 등교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방학 때 신나게 놀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어서 크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한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같은 학년에는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었다. 아무래도 유학을 중~고등학생 때 많이 오다 보니, 초등생의 비율이..

카테고리 없음 2025.04.07

땅 파며 놀았던 어린시절 이야기

필리핀 Cottonwood, 그곳에선 정말 순수했다.필리핀 유년시절엔, 아무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교류라고는 같은 선교사 자녀 학교의 선생님 부부와 자녀들이었다. 아마 필리핀 유년시절의 첫 친구였을 것이다. 마침 동갑내기 한명, 그리고 그의 동생 한명은 동네 악동들 처럼 나와 같이 어울려 지냈다. 필리핀 안티폴로는 한국과 달리 빌리지(마을)형태의 주거 공간이 많았다. 내 친구들은 Cottonwood라는 빌리지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방학때 그들과 빈 공터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동들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웠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공사현장에 놓여있는 고무 파이프를 멋들어진 검으로 상상했다. 무른 흙으로 이뤄진 언덕에 올라가면 마치 그것이 삽으로 탈..

카테고리 없음 2025.04.04

필리핀으로 떠난 날, 어린 나에게 해외란 무엇이었을까?

필리핀으로 떠나던 날, 2007년 8월 12일2007년 8월 12일. 필리핀으로 이민하게 되었다. 나의 해외 생활의 시작이었다. 교회의 목사님이었던 아버지였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선교활동‘을 나가는 것이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친구들은 내가 ‘이민‘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어린 나로서는, 그저 ‘이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 해외는, 식탁유리 밑에 있던 세계지도를 따라 그려보며, 각 나라의 수도이름을 외워보며 접한 것이 다였다. 오히려 그래서, 복잡한 속사정은 알지 못했기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는 어둠이 깔려있었다. 요즘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본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가로등도 없..

카테고리 없음 2025.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