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11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날들

고등학교 2학년,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다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외국민 전형을 목표로 원서를 접수해야 했다.재외국민 전형에는 몇 가지 구분이 있었다. 3년제, 9년제, 그리고 12년제. 12년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해외 학교를 다닌 경우에만 해당했고, 나는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3년제로도 충분히 수시전형에 이점이 있었다. 당시 내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바로 한국에 있는 의대에 진학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생명과학 분야로 전공을 정하고, 의학 전문 대학원에 진학을 상상하며 입시를 준비했었다.이과를 선택한 이유와 수학과의 싸움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과와 문과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과학을 좋아했고, 꿈도 의료계열이었기 때문에 ..

카테고리 없음 2025.04.30

물과 관련된 즐거운 기억들

나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네다섯 번쯤 있다. 그때마다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물에 대한 기억은 이상할 만큼 긍정적이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평온한 기분을 느끼곤했다. 아마 살아남았기 때문에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역시 섬나라에서 유학하며 지낸 시간 속에서, 물놀이의 기억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리조트에서의 기억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아마 학교에서 같이 간 리조트에서의 기억이 있다. 유수풀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구간에 들어섰다. 발을 디디려고 해도 허공만 차는 기분이었고, 튜브를 잡은 팔에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발끝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카테고리 없음 2025.04.29

알고 보니 재미있고 특이했던 영어 공부 생활

영어로 배운 사회과학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영어를 배웠다. 우리 학교에서는 사회 과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쳤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영어로 세계사를 배우고, 지리를 배우고, 사회학을 배웠다. 당시에는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어진 교재를 받아들고, 수업에 따라갔다. 교재는 꽤 두껍고, 내용도 복잡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책들은 대학교 1학년 교재였다. 중학생이 대학 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선생님들은 그걸 그대로 읽으라고 하진 않았다.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해주셨다. 중학교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영어로 배운다고 해서 어려운 단어를 억지로 외우게 하거나, 암기만..

카테고리 없음 2025.04.28

ESL이 토익 900점대가 되기까지

영어라는 낯선 이름과 나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ESL 반에 들어갔다.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말 그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 들어가는 반이었다. 선생님은 영어로만 수업을 했고,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나마 몇 단어 정도만 들렸고, 그걸 바탕으로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 수업은 어렵고 답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억지로라도 듣고 맞추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영어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단어 하나하나보다는 상황을 통해 의미를 추측하는 방식이 내게 잘 맞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영어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를 위해 원어민 선생님들은 사탕 같은 군것질 거리를 상으로 주셨다. 당시에 ..

카테고리 없음 2025.04.26

내가 경제를 깨닫게 되었던 건 아버지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중학생의 용돈 관리 필리핀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 미성년자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외에서 돈 모으기 위해 일할 수는 없으니, 용돈이라도 모았을까?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주신 정기적인 용돈으로 돈을 모은 것이 아니다. 사실 나에게 용돈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간식 사먹을 소소한 돈이었고, 그정도는 부모님이 얼마든지 사주셨다. 특히 필리핀에서 내가 사먹는 간식이라고 해봤자 당시 3000-4000원으로 사먹을 수 있던 사각 치즈 묶음, 가끔 먹었던 100원짜리 빵들이었다. 의도치않게 돈을 모으게 된 것은, 아버지를 따라 선교팀 가이드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환전을 해서 팀마다 얼마씩 가져오고, 당연히 여행을 하다보면 다 쓰게 되는 경우는..

카테고리 없음 2025.04.11

내가 가이드했던 필리핀 여행지들

아버지의 비서로 산다는 것선교지에 있다보면,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선교여행'이라는 것을 우리 집에 올 때가 있다. 주로 필리핀 빈민가, 아버지의 사역지 등 여러 곳을 다니다가, 하루 이틀 정도는 관광지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아버지가 만든 선교여행 기획이었다. 중학생들, 고등학생들, 청장년 등 나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팀이 왔었는데, 보통 한국의 방학 때마다 오기 때문에 나도 시간이 있었고, 점점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회화와 통역이 가능해져 그 일정들을 함께 하며 아버지의 비서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관광지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가이드처럼 그곳의 역사, 이야기을 설명했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 그 중 실제로 가볼만한 곳을 추려서 소개를 해보겠다. 인트라무로스와 호..

카테고리 없음 2025.04.10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들

골을 넣고 싶던 소년의 축구 일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아버지를 따라 축구 경기하러 간 것은. 대부분 어른들이었고, 나는 깍두기처럼 최전방에서 공격수 역할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수비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서 페널티 킥을 차게 되었는데, 그때가 내 첫 골이었다. 골키퍼를 하던 고등학교 형이 봐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그 뒤엔 집에 와서 그날 몇 골을 했는지, 어시스트는 몇 개를 했는지 적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축구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중학생 때까지 적어놓았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축구선수가 된 것처럼 느끼며 자랐던 것 같다 닌텐도 DS가 열어준 우정의 문아버지가 어느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내게 선물이 있다고 하셨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4.09

잊히지 않는 태풍의 흔적들

선교사 자녀 학교 초등 기숙사2009년, 나는 국제학교로 돌아갔다. 선교사 자녀 학교라는 특수성이 있어 대부분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었는데,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기숙사 사감을 맡은 우리 부모님이셨기에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살던 브룩사이드의 집은 마당이 있고 주변에 공원도 있던, 주거 환경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당연히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끔은 마당에서 캐치볼도 하고, 골프도 쳐보고, 공원의 축구장에서 축구도 하는 좋은 환경에서 보낼 수 있었다. 아침으로는 주로 판데살이라 불리는 필리핀 전통 빵을, 점심 저녁에는 어머니와 가정부(현지에서는 ‘아떼(ate)’라고 부르는데, 언니 또는 누나라는 뜻이다.)가 같이 한식을 준비해 주었다. 토요일에는 한인들..

카테고리 없음 2025.04.08

필리핀 브룩사이드(Brookside), 나의 유년 시절

브룩사이드 Dayspring Academy2008년, 우리 가족은 브룩사이드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그 이름답게 시내 옆(brook + side)에 지어진 마을이었다.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국제학교를 떠나 필리핀 로컬 학교인 Dayspring이라는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 학기제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국제학교의 여름방학을 잃고 바로 등교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방학 때 신나게 놀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어서 크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한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같은 학년에는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었다. 아무래도 유학을 중~고등학생 때 많이 오다 보니, 초등생의 비율이..

카테고리 없음 2025.04.07

땅 파며 놀았던 어린시절 이야기

필리핀 Cottonwood, 그곳에선 정말 순수했다.필리핀 유년시절엔, 아무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교류라고는 같은 선교사 자녀 학교의 선생님 부부와 자녀들이었다. 아마 필리핀 유년시절의 첫 친구였을 것이다. 마침 동갑내기 한명, 그리고 그의 동생 한명은 동네 악동들 처럼 나와 같이 어울려 지냈다. 필리핀 안티폴로는 한국과 달리 빌리지(마을)형태의 주거 공간이 많았다. 내 친구들은 Cottonwood라는 빌리지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방학때 그들과 빈 공터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동들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웠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공사현장에 놓여있는 고무 파이프를 멋들어진 검으로 상상했다. 무른 흙으로 이뤄진 언덕에 올라가면 마치 그것이 삽으로 탈..

카테고리 없음 2025.04.04